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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미겔 백업

2ho 2025. 2. 26. 23:51

용신의 총아, 밀레이에게 용신의 애정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밀레이의 유년시절에는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 친구가 함께했다 노을같이 붉은 머리의 누구보다 부드럽게 웃어주는 친구가 기억 속에 함께했다 이상한 일이지 분명 그런 아이 만난 적 없는데도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기억 속에는 늘 그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가 있었다
 
거짓말같이 기억 속의 아이와 마주한 것은 처음 사교계에 나갔을 때였다 밀레이는 백작가의 사생아로 밖에 나올 일이 없었는데 백작의 변덕으로 처음 파티에 이끌려 나오게 됐다 거기서 꿈에 그리듯이 보고싶었던 친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친구의 이름은 미겔 페르베일라라고 했다 미겔은 저와 눈이 마주치자 피하는 것처럼 눈을 돌렸다 밀레이는 혹여 그에게도 기억이 있진 않을까 두근거렸기에 미겔이 자신을 피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때 밀레이는 미겔에게 다가갔다 예절수업을 배우지 못해 무례하다 느껴질 수 있는 인사였지만 미겔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기 좋게 웃어주었다 기억 속에서만 보던 미소에 밀레이는 미겔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너랑 친구가 될래! 충동적이면서도 언제나 마음속에 품어온 말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차분했다 좋은 사이로 지내요
 
 
말뜻은 분명 좋았으나 듣기에는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그 미묘함을 밀레이는 알지 못했다 밀레이는 즐겁게 미겔에게 자신은 계속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느니 분명 우리는 잘 통할 거라느니 처음 만난 상대에게 별별 소리를해댔다
 
이윽고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게 됐을 때만 해도 밀레이는 행복했다 외롭고 곁에 아무도 없던 날들에서 드디어 친구가 생긴거야!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 날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밀레이 슈리하스츠의 아버지 슈리하스츠 백작은 밀레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 나잇대 소년이 받았어야 할 교육은 받지 못하고 겪어서는 안될 가혹한 일들이 벌어졌다
 
 
 
 
밀레이는 허락없이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가 나갈 수 있는 자리는 백작이 그를 상품으로 사용할 때와 파티가 있을 때 뿐 백작은 겉으로는 파티에 사생아를 데리고 나가 자애로운 이미지를 얻었고 뒤로는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었는데 그중에는 인신매매와 매춘도 포함됐다
 
 
 
 
 
밀레이는 고급 상품으로 귀족들에게 귀족을 범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쾌락을 주었다 그중에는 그저 어린 소년에게 흥분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객층은 다양했고 밀레이는 그들의 얼굴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 체형 향내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이 썩어들 것 같은 생활에도 겨우 버틸 수 있었던 건 미겔과의 기억덕분이었다 기억 속에서는 이 시기의 나도 미겔과 즐겁게 놀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모든 건 전부 나쁜 꿈일 거야 깨고나면 미겔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미겔 미겔 미겔 어서 깨고싶어
 
그럼에도 밀레이는 웃을 수 있었다 드디어 미겔과 만날 수 있으니까! 계속 생각했다 미겔이 기다렸다고 어서와라고 말하는 장면을 밀레이는 다급한 마음과 다르게 느리게 끌려오는 다리를 움직여 미겔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 미겔, 나 기억하지? 친구잖아
그러나 대답은 가벼운 인사치레뿐이었다 밀레이가 상상한 감동적인 장면은 당연히도 그저 꿈이었을 뿐... 밀레이는 미겔에게는 기억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치부하고 끊임없이 미겔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모두와 친한 미겔은 밀레이에게만 벽을 쳤다
그 태도는 밀레이를 기어코 무너지게 만들었다 오직 미겔을 생각하며 버텨왔는데 그 모든 것들이 허상이고 그 기억이 꿈이라고 시궁창같은 나날들이 현실이라고 위에서 누군가가 비웃는 것 같았다
유일한 희망이 원망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미겔은 밀레이가 불편했다 미겔에게 밀레이는 친구였었다 그것도 오랫동안이나 소중한 친구였다 하지만 밀레이는 자신의 마음을 배반했다 몇 번이나
 
 
 
다리가 잘린 날에도 꼭 이런 날씨였다 안좋은 일이 생길 때면 벼락이 쳤기에 밀레이는 이런 날씨가 끔찍하게 싫었고 그래서 한때 그의 희망이었던 미겔을 끔찍이도 찾아다녔다 다리를 질질 끌며 겨우 미겔을 찾아낸 밀레이는 미겔의 멱살을 잡았다 다리에서는 힘이 풀려 미겔을 덮친 것 같은 자세가
 
 
 
 
됐다 번개가 칠 때마다 밀레이는 미겔에게 자신의 마음을 토해냈다 넌 나와 친구여야 한다고! 그런데 어째서, 왜 그것들이랑만 함께 다니는 거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네가 나한테 이래도 돼? 정말로 나만, 내 기억에만 있는 꿈인건가? 하...! 넌 한 번도 부정한 적 없지
 
 
 
 
너도 나와 같은 친구였던 우리의 기억을 갖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게만 그런 태도를 취하겠지. 안그래? 대단하신 페르베일라 백작의 장남. 네가 없어서 내가 어떤 삶을 보냈는데, 넌 나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야. 내가 누구에게 사랑받는지 너도 알잖아. 빌어먹을 저주를 달고 산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면 안되는 거잖아! 네가 그것들 옆에서 즐겁게 웃을 때마다 널 찢어죽이고 싶어. 그 옆자리에 있어야 할 건 나였다고!
 
 
 
이런 때도 넌 아무 말도 안해 외면하지마 날 그저 지나갈 한때인 것처럼 그렇게...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미겔은 창 밖을 쳐다봤다 지금쯤 그 둘은 함께 죽어있겠지 알 수 있었다 이 17일을 넘긴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자신도 곧 죽을 것이다 미겔은 밀레이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맞아 우린 친구였어 서로의 이해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밀레이는 미겔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친구였어라는 말에 마음이 허물어졌다 밀레이 혼자만 지닌 기억은 분명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받는 순간이었다
 
 
 
 
밀레이는 미겔과 파티에서 처음 만난 그날처럼 순수하게 웃었다 그것 봐! 하하 내 친구잖아... 밀레이는 자신의 상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흉터와 의족을 내보였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라는 듯한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었다 나의 이 땋은 머리도 어릴 때 너희 유모가 나한테 해준 거잖아 그렇지?
 
 
 
 
똑같이 따라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했어 너와 친구였던 기억들이 진짜지? 지금까지는 꿈이었지? 미겔, 어서 대답해줘 곧... 깨어나겠지? 미겔은 쓰게 웃었다 밀레이가 말한 것들 전부 현실이었고 깨어나겠지? 라는 말이 곧 죽고 새롭게 반복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후 미겔은 죽고 밀레이는 죽은 미겔 위에서 역시 꿈인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쓰러지다가 8회차의 삶이 시작됨 8회차에서는 미겔이 밀레이와 다시 친구가 되고 밀레이는 6, 7회차에 겪은 일들이 드문드문 기억에 남아있어서 ptsd에 시달리지만 미겔과 여러모로 말싸움도 벌이면서 잘 지내게 됨